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삼국시대_고구려3화

삼국시대_고구려3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서기 18년 유리명왕이 승하하자 태자였던 무휼이 다음 왕위에 올라서게 되니 이가 바로 고구려 3대 국왕 대무신왕이 됩니다. 그는 2대 국왕이었던 유리명왕의 삼남으로 어머니는 비류 국와이었던 송양의 딸이었는데 우너래대로라면 두명의 형이 있어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처지였으나 장남 도절이 요절하고 차남 해명이 자결했기 때문에 국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한데다 지략이 있어 11살의 어린 나이에 태자에 임명이 되었음에도 물러남이 없었는데 부여국 사신이 건너와 고구려에게 종속할 것을 명했음에도 일이나 잘하라며 충고하는 기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여국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을 했을 때에는 직접 전장으로 나아가 군사를 이끌고 대승을 거두었던 만큼 그는 재위 기간동안에도 여러 국가들을 점령하고 통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서기 20년 부여국 대소왕이 사신을 통해 고구려에 붉은 까마귀 한마리를 보냈는데 까마귀 머리는 분명 하나인데 몸통이 둘이니 부여 입정에서는 굉장이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내 두 나라가 조만간 통합될 것이라며 조롱하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고구려에서는 까마귀가 자신들에게 넘어왔으니 우리가 부여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반격하게 됩니다.
결국 대무신왕 재위 5년차인 서기 22년이 되자 부여국을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고 부여 대소왕도 이에 맞추어 전군을 동원해 고구려군을 상대하기 위해 출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고구려군 선봉장 괴유가 대활약함에 따라 대소왕마저 전투에서 패배해 도망치다 결국 괴유에게 목이 날아가는 등 무참히 짓밟혔으며 부여는 만주지방에서의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대소왕이 죽자 부여는 갈갈이 찢기며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부여 유민 1만명을 이끌고 고구려에 항복하였으며 대소왕의 동생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해두국 왕을 축출하여 그곳에 갈사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이후 고구려는 근방의 여러국가들을 공격해 개마국과 구다국들을 정벌했고 부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고구려의 국력은 이떄부터 점차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서기 32년 대무신왕의 아들이었던 호동왕자가 옥저로 출타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낙랑국 국왕 최리를 만나게 됩니다. 최리는 호동왕자가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임을 단반에 알아채어 그를 대접할 겸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고 고구려와의 우호를 더욱 돈독히 다지기 위해 자신의 딸과 혼인까지 주선하게 되니 그녀가 바로 낙랑공주였습니다.
낙랑공주는 호동완자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나 호동완자는 낙랑군이 고구려에게 병합될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혼인을 마치고는 고구려로 홀연히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서신을 보내고구려가 낙랑군을 정벌할 것이니 낙랑 공주가 직접 무기고의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자신들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공로로 부부로써의 연을 이어나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낙랑공주는 순진하게도 호동왕자의 말만 믿고 낙랑군의 무기고에 몰래 들어가 북과 나팔을 모두 부수곤 호동왕자에게 이를 알렸는데 호동왕자는 낙랑군을 공격할 좋은 기회라 여기어 대무신왕에게 이를 고하게 됩니다.
이후 대무신왕은 호동왕자의 건의에 따라 군사를 일으켜 낙랑군을 공격하고 이 모든게 자신의 딸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 최리가 눈물을 머금은 채 낙랑공주를 죽이고는 그대로 항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무신왕에게는 첫번째 왕후였던 송씨와 두번째 왕후였던 해씨가 있었는데 호동왕자는 송씨가 아닌 해씨의 아들이었습니다. 때문에 낙랑군을 공격해 정벌하는 데에 큰 공로를 세운 호동왕자의 입지가 탄탄해지자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길 바랬던 송씨는 호동왕자가 자신을 강제로 간통했다며 음해하곤 궁지로 몰아넣게 됩니다.
이에 호동왕자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음에도 아버지 대무신왕과 두 어머니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이보다 더한 불효가 없다며 자결하게 되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게 됩니다. 결국 그로부터 한 달 뒤 송씨의 뜻대로 자신의 아들 해우가 태자에 임명되었고 해우는 훗날 고구려 5대 국왕 모본왕이 됩니다.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신나라 왕망이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에게 밀려나 멸망함에 따라 중국대륙은 다시 한나라가 통치하게 됩니다. 이에따라 더욱 강성해진 한나라와 변방을 맞대고 있는 고구려는 잦은 마찰을 빚었으나 고구려가 한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식으로 두나라는 잠시나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이후부터 고구려와 관련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라 딱히 어떠한 것을 어떻게 무엇을 했따라는 것이 없으며 그로부터 약 10년 뒤 대무신왕은 41세의 나이로 승하하게 됩니다.
이때 태자 해후의 나이가 매우 어려 대무신왕의 동생인 해색주가 등극하게 되니 이가 바로 고구려 4대 국왕 민중왕이 됩니다. 민중왕은 약 5년간 재위했으나 마찬가지로 기록이 없는 상태이고 재위4년차인 서기 47년 사냥을 나갔다가 한 석굴을 발견하곤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왕이 사냥을 나갔따가 석굴을 발견하고는 좌우 신하들을 둘러보녀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이곳에 장사지내라. 모름지기 다시 능묘를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제 14권 고구려본기 제2 민중왕-
이듬해 서기 48년 민중왕이 승하하며 그가 원했던 석굴에 묻힌 뒤 태자였던 해우가 다음 고구려 국왕으로 등극하게 되니 이가 바로 고구려 5대 국왕 모본왕이 됩니다. 하지만 모본왕은 어머니 송씨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국왕의 자리에 앉히고자 온갖 술수를 부렸음에도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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