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삼국시대5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고국원왕 - 삼국시대_고구려8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고국원왕 삼국시대_고구려8화 339년 고국원왕은 세력이 커진 전연과 맞서지 않으며 동맹을 맺고자 했고 이듬해 태자를 전연에 보내 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연은 미천왕 시절부터 자신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구려에 대해 여전히 강경노선을 취함으로써 342년 약 5만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력부대 4만은 남쪽으로 진격하게 하고 나머지 1만 5천 명은 북쪽으로 보내 양동 작전을 펼치면서 고구려의 수도였던 환도성을 일거에 들이닥쳐 점거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북쪽을 방어하던 고국원왕의 동생 고무가 5만의 병력으로 주력부대 4만을 방어함에 따라 고국원왕은 붙잡히지는 않았으나 아버지 미천왕의 왕릉이 도굴당했는데 이때 미천왕의 .. 다다가 관심있는/한국사공부 2022. 5. 21. 더보기 ›› 나라를 멸망시킬뻔 했던 동천왕 - 삼국시대_고구려6화 227년 산상왕이 죽자 그의 아들 교체가 등극하게 되니 디가 바로 고구려 11대 국왕 동천왕이 됩니다. 동천왕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위나라와 화친을 맺으며 가깝게 지냈으나 238년 요동태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 조예는 사마의에게 군사 4만을 주어 이를 토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도 위나라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1천을 보냈으나 요동이 멸망하면 자신들과 국경을 맞대는 것은 위나라 였기 떄문에 이들의 전력을 파악하고자하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요동으로 출병한 사마의가 1년만에 그들을 격파하였음에도 위나라는 고마움의 말 한마디도 없이 입을 닫았는데 이러한 위나라의 행태가 불만이었던 동천왕이 224년 군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동천왕 본인이 직접 군사 2만을 이끌고 위나라 서안평 즉 지금의 단둥.. 다다가 관심있는/한국사공부 2022. 5. 14. 더보기 ›› 고구려 9대 국왕 고국천왕의 여러 업적들 - 삼국시대_고구려5화 삼국시대_고구려5화 고구려 9대 국왕 고국천왕의 여러 업적들 146년 차대왕은 용맹하였으나 인품이 없어 남을 배려할 줄 몰랐는데 그의 됨됨이를 미리 알아본 고복장은 차대왕을 미리 제거해야 뒤탈이 없을것이라 태조대왕에게 조언을 했었지만 그간 세운 차대왕의 공이 너무 커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태조대왕을 밀어낸 차대왕은 왕자 시절부터 태조대왕과 했던 정복사업은 모두 접은 채 왕권강화에만 신경을 썼는데 때문에 자신을 모함했던 신하들과 조카들을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동생이던 백고를 견제하며 왕위를 넘보지 못하게 하니 차대왕이 재위에 올라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간언할 생각을 못했으며 밖으로는 천재지변으로 민심이 불안해지자 165년 명림답부에게 시해 당하는 불운을 맞게됩니다... 다다가 관심있는/한국사공부 2022. 5. 12. 더보기 ›› 정말 태조대왕은 119살까지 살았을까? - 삼국시대_고구려4화 정말 태조대왕은 119살까지 살았을까?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그런데 요동태수(遼東太守) 제융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므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삼국사기 제 14권 고구려본기 제2 모본왕- 모본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백성들의 삶이 매우 고단했는데 그래도 제위기간 동안 괄목할만한 성과를 들자면 중국대륙을 공격해 한나라의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각 사서들의 기록들이 천차만별 서로 다르게 기록이 되어있어 정말 고구려가 대륙으로 쳐들어가 그곳에서 한나라와 전쟁을 했는지는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를 보면 요동 변방에 맥인이 침략했다고 쓰여있는데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구려와.. 다다가 관심있는/한국사공부 2022. 5. 10. 더보기 ›› 유리의 아버지찾아 삼만리 - 삼국시대_고구려2화 삼국시대_고구려 유리의 아버지찾아 삼만리 유리는 어려서부터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장난치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하루는 참새를 잡겠다며 새총으로 여기저기 마구 쏘아대다가 실수로 그곳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의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주머니가 유리에게 이르길 "아버지없이 자란 것들이 망나니처럼 구네"라며 면박을 주자 유리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슬픈 마음에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묻게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부여 사람이기는 해도 이곳에서 사는 것을 허락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훗날 자신을 찾게 되면 자신과 나눈 칼 조각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온 동네를 이 잡듯이 돌아다녔지만행방을 찾지 못해 크게.. 다다가 관심있는/한국사공부 2022. 5. 6.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