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고구려 건국신화 - 삼국시대_고구려1화

삼국시대_고구려
주몽의 고구려 건국신화
주몽은 동북아시아 절대 강자 고구려를 걱국한 인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성씨와 이름은 각 기록들마다 천차만별 다른 모습으로 기록되어있는데 무엇보다 주몽의 성씨는 해모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해씨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이름또한 주몽이 아닌 추모라고 불러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원전 58년 강을 다스리는 신이었던 하백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유화, 훤화, 위화라는 세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압록강 부분인 청하 웅심연에서 놀고 있었는데 때마침 하늘신의 아들은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내려오던 도중 웅심연안에서 놀고 있는 해모수의 딸들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해모수는 그 중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났던 유화에게 반해 그녀를 꾀어내어 하룻밤을 보내곤 홀연히 하늘나라로 돌아갔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하백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한 유화를 내쫓기에 이릅니다.
때문에 도망치듯 쫓겨난 유화는 갈 곳이 없어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를 면치 못했으나 때마침 동부여의 왕이었던 금와왕을 만나게 되어 유화의 딱한 신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금와왕이 그녀를 거두어 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방에만 머무르던 유화에게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던 것도 잠시 그녀가 햇빛을 피할 때마다 햇빛은 그녀를 따라다니며 계속 몸을 비추었고 어느 순간엔가 덜컥 임신을 하게됩니다.
결국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임신을 한 유화가 엄청나게 큰 알을 낳자 금와왕은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곤 돼지에게 던져주었으나 먹지 않았으며 들판에 내던졌지만 짐승들은 오히려 알을 보호하곤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새들이 쪼아먹도록 내다버려도 날아와 알을 품어주었으며 금와왕이 알을 꺠부수기위해서 도끼질을 하였어도 실금하나 생기지 않았으니 하는 수 없이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마침내 유화가 애지중지 알을 보살핀지 얼마쯤 됐을까.. 왠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오니 이 사내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걸어다니는 것은 물론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힘이 장사였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 사내아이는 훌쩍 자라 1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쓸 줄 알았는데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나 백발백중 목표물에 정확하게 맞춘 이 아이의 이름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 하여 주몽이라 짓게 됩니다.
그러나 금와왕 에게는 장남 대소를 비롯해 여러 아들이 있었으나 이런 주몽의 능력을 시기해 매우 두려워 했고 왕자들은 힘을 합쳐 주몽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부여에서 자신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 것을 염려한 주몽이 전전긍긍하던 찰나 어머니 유화가 주몽에게 부여를 떠날 것을 권하게 되면서 주몽은 자신의 절친이었던 오이&마리&협보를 데리고 부여를 탈출하게 됩니다.
이때 주몽은 자신의 부인 예씨와 어머니 유화를 뒤로한채 그리고 예씨의 뱃속에 있는 아들 유리에게는 자신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부러진 칼 조각을 전해주곤 도망치듯 부여를 벗어났으나 대소를 비롯한 왕자들은 추격대를 보내 이들을 사로잡으려 했습니다.
결국 주몽은 추격대를 피해 엄체수에 이르렀으나 강이 워낙 넓어 쉽사리 건너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몽이 엄채수를 향해 나는 하늘신의 손자이며 강의 신의 외손자이니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몽의 목소리를 들은 자라와 물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주몽의 강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만들어주었고 주몽이 무사히 다리를 건너자 자라와 물고기들은 다시 흩어져 강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추격대를 피해 무사히 도망친 주몽은 계속 남하해 졸본땅에 도착 그 곳을 약탈하던 말갈족을 물리치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니 그게 바로 고구려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그곳에서 두번째 부인 소서노를 맞이하면서 졸본 귀족들의 힘을빌어 고구려의 대외 팽창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고 점차 세를 불려가던 고구려는 영토확장을 위해 변방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시킬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이듬해 기원전 36년까지 변장에 살고있던 말갈족을 평정하는 한편 비류스 근방에 있는 비류국을 쳐들어가 비류국왕 송양을 굴복시킨 후 다물도로 삼았습니다.
이 때 전해지는 신화에 따르면 주몽이 송양에게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송양은 활쏘기 대결을 하여 패배하는 사람이 항복하는 것으로 대결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송양은 사슴그림을 그려 100보 앞에 걸어 둔 후 활 시위를 당겼으나 맞추지 못하였고 주몽은 옥반지를 100보 앞에 걸어두게 하고는 활시위를 당기자 정확히 옥반지를 맞추어 산산조각이 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류국을 통합한 고구려는 기원전 34년에 이르러 졸본성에 궁궐을 완성하여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이는 한 편 기원전 32년과 기원전 28년에 연달아 행인국과 북옥저를 정벌해 통합하니 고구려의 국력은 점점 강성해져만 갔습니다.
기원전 19년 부여에서 첫번째 부인 예씨와 아들 유리의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남쪽으로 도망쳐 아버지 주몽을 찾아오니 이 때 주몽은 자신의 아들 유리를 다음 후계자로 정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주몽이 부여에서 도망쳐왔을 당시 둘째 부인 소서노에게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몽은 이 둘을 자신의 친 자식처럼 어여삐 여기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리가 살아서 주몽을 찾아오자 비류와 온조는 자신들이 버림받고서 언제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고 여겼었는데 결국 그 해 가을 주몽이 승하하자비류와 온조는 고구려에서 지내기 힘들 것이라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졸본 성을 빠져나와 계속 남하하였고 형인 비류는 미추홀 즉 오늘날의 인천광역시에 이르러 도음을 정함과 동시에 동생 온조는 위례성 즉 오늘날의 서울시에 도읍을 정해 각자 나라를 세우게 되니 이게 바로 백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몽은 죽어서 기린을 다고 하늘나라에 갔다는 등의 여러 신화들이 굉장히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주몽이 옥으로 된 채찍만 남겨놓고 하늘나라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등 여러 전설들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주몽의 뒤를 이어 유리가 다음 왕위에 올라서게 되니 이가 바로 고구려 2대 국왕 유리명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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